내가 가꾸는 텃밭은 마당 위쪽으로 약 열 평, 마당 아래쪽으로 약 이십평 정도이다.
산비탈에 일구워 놓은 옛날의 화전 터는 대략으로도 이천 평은 되나 나는 그것을 가꿀 재간도 없지만 그곳에 밭농사를 지을 부지런함도 없다.
그래서 예전에 밭이었던 산비탈은 개망초와 산딸기나무와 억새풀들에게 내어주고 고작 삼십평의 텃밭에다 감자, 오이, 고추 따위의 야채를 조금 심어먹는 흉내나 내고 있다.
햇살이 따뜻한 점심때면 개다리소반에 밥 한그릇과 된장, 초고추장을 한 종지 얹어놓고 상을 마루로 들고 나간다.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가지 않고 풀밭으로 간다. 텃밭보다는 풀밭에 먹을 것이 더 많다.
취나물 몇 잎, 민들레 한 포기, 머윗잎 대여섯장, 돌나물, 애기 뽕잎, 산당귀잎 몇 장 뜯어 복숭아나무 아래 분수대에서 헹군다.
그것들을 쌈을 싸서 먹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먼 능선으로 구름이 건너가고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입속부터 창자까지 온통 초록물이 든다.
나는 숲속의 게으름벵이
정용주
2003년 7월, 복잡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과 음악 CD, 쌀 한포대를 짐에 꾸려 치악산에 들어왔다.
'적어도 두달은 굶지 않는다, 나머지는 천천히 생각하자'하고 들어온 산 생활이었는데, 하루하루 살다보니 산속의 삶이 마음에 들어
조그맣게 텃밭도 가꾸고 토종벌도 기르면서 되도록 오래도록 산에서 살 궁리를 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머리는 인디언처럼 길어지고 지게질이나 톱질에도 익숙해졌다. 그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일하고 싶으면 조금 하고
싫으면 말고 하면서, 최소한의 것으로 굶어죽지 않으면서 자연속에서 뒹구는 생활인이다.